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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전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지친 1년이었다. 늦게 시작하여 조급증이 걸린 원인도 있었지만, 나이도 나이인지라 일주일에 하루 뿐인 


쉬는 날도 반납하여 쉴틈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은 몸을 추스리고 컨디션 조절을 하라고 대학 동기들이 말해줬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휴일을 반납하며 버텨온 날들이 아까워서라도 전날이라도 끝자락까지 움켜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복싱을 해오면서 느꼈던 거지만 무슨일이든 초장에 발라버리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것 같다. 첫인상에서 무너지면 그 맨탈은 쉽게 회복되지 못한다.


그래서 1교시 시험인 경영과 경제를 전날 눈에 미친듯이 발랐다.


아침에 독서실에 와서 재무관리 공식들과 기출문제들을 눈에 미친듯이 발랐고, 그다음은 단권화시킨 경제기본서 체크된 부분과 문제집에서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스키밍하면서 머릿속에 박아두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단권화시켜 놓았던 객관식 경영학 이론 부분을 스윽스윽 읽어가며 마지막 회독을 마쳤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긴장을 풀겸 유튜브에서 재밌는 영상을 틀어 놓고 봤다. 준비기간 중 큰 가정사가 있어 공부에 완전히 전념하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시간만큼은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기대감과 아쉬움의 사이에서 온갖 상념에 젖어들었다.

(시험기간 동안(아직도 수험생이지만) 유튜브를 많이 봤었다. 예능도 보지 않고 운동도 하질 않아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이었지만 이 덕분에 결과적으로 수험기간만 늘어난 꼴이 되어버렸다)


약 3시간 눈을 붙히고 기상하였다.



<시험당일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리자마자 기상했다. 공부기간 만큼은 끈질기게 올빼미 인간형을 구사하였던 나였다. 시험일은 아침에 있기 때문에 원래 아


침형인간이거나, 한 2주나 빠르면 1달 전부터 조정하여 익숙해지게 만들지만, 급작스럽게 바꾸느라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하루만 잠을 줄


이고 시험보러 가자는 주의였다.


이 경향은 그 다음에 2차까지 유지되지만, 사실 지나고 보니 드는 생각이지만 자는 시간을 조정해 두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시험장소는 홍익대였고, 택시타고 넉넉잡아 30분정도 걸릴 것이라는 것을 시험장소 공고가 떴을 때 미리 알아두었다.


잠을 못잔 대신에 밥은 든든하게 먹어놓자 하여 많이 먹어놓았고, 어머니가 포장해주신 점심에 먹을 죽과 쉬는시간에 공부할 거리 그리고 미리 사두었던 초콜렛과 물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이때까진 아침에 많이 먹은 밥이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치 않았다.



<시험장소 도착>


겨울의 미세먼지가 듬뿍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아니면 먹먹한 하늘에 태양에 솟아오르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잿빛 느낌을 가진 하늘을 바라


보며 홍대에 도착하였다.



학교 앞에서 스타2 자유의 날개 오프닝 영상의 타이커스 핀들레이처럼 비장한 눈으로 담배 한개피를 피고 고사실로 이동하였다.


꽤나 일찍 도착했던지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고사장 앞에는 학원에서(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쇼핑백으로 전단지와 자그마한 선물(간식과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침착함, 기대감, 흥분감, 긴장감이 녹아들어 있었고, 나 또한 착석하고 나자 그런 감정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경영학은 오늘 잠들기 전 새벽에 봤으므로, 정리해놓았던 재무관리 공식들과 경제학 정리노트를 보았다. 시험시간이 가까워오자 대학교 강의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고 공기마저 뎁혀졌으나, 분위기는 마치 서슬이 푸르스름한  한자루의 칼날과 같았다.


하지만 내 배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경험상으로 스트레스성 장염?(민감성 대장?)이 있는 것 같다. 대학에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볼 때도, 심지어 2시간짜리 토익 시험을 볼 때도 항상 그랬다. 역시 이번에도 빗겨나질 않았다.


노트를 들며 부랴부랴 화장실로 갔으나 일명 똥줄이 어마무시하게 길었다. 대한민국에 나같은 장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보게 되었다. 그리고 시험볼때마다 보게 되었다..-_-



다들 노트를 들면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과연 글이 읽힐까란 의문이 들었다. 당장 나부터도 괄약근의 문지기가 되느라 글을 못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얼굴과 눈은 노트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모두가 그런 것 같았다. 3연벙을 당한 홍진호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것처럼 우리들도 비록 똥줄에 늘어서 있으면서 그 시간만큼은 괄약근을 컨트롤하고 있었지만, 머릿속만큼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간신히 볼일을 보고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잘 참은 상으로 아몬드초콜렛을 한아름 입속으로 털어주면서 책상정리는 시작되었다.


책상정리는 각 시험시간 30분전쯤부터 실시한다. 화이트(테잎형 화이트인데 써도 된다. 2년 동안 1차 응시하면서 모두 썼으나, 예상점수가 다르게 나온적은 없었다. 아니 16년 시험에는 오히려 2.5점이 높게 나왔다. 잘 찍었나 보다.), 컴퓨터용 싸인펜, 0.7 파란색 제트스트림(2차를 제외하고는 흑백의 시험지에 잘 보이기 위해 파란색 펜을 썼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응시표, 신분증, 초콜렛, 물을 제외한 모든 물품은 가방에 넣어둔채 교실 앞이나 뒤로 옮겼었다.


스톱워치를 올려두는 사람(회계사 수험생들의 카페인 공회모에서는 스톱워치가 되는 감독관, 안되는 감독관이 따로 있다고 한다. 나는 항상 아날로그형 손목시계를 썼었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초콜렛을 먹는 사람, 멍때리는 사람 이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긴장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OMR마킹표와 시험지를 받는다. 시험지를 받고 파본검사를 하는데 빨리 후두룩 넘기지 않아도 된다. 남들과 비슷하게 적당한 속도로 넘기면서 파본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웽~하는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리며 1교시는 시작되었다.



<1교시>


1교시 구성은 이렇다.


시험시간 : 110분


과목: 경영학 40문제 (일반경영 24문제, 재무관리 16문제), 경제학 40문제


나의 전략은 일반경영을 풀고 경제학을 풀고 재무관리로 돌아오자는 것이었다. 일반경영은 평년도 난이도와 비슷했다. 평이했었다.


경제학으로 넘어가자 눈이 핑핑 돌기시작하였다. 문제는 미시경제학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노동수요함수식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비루한 내 실력에는 난해한 것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거시경제학으로 넘어오면서 부터는 거의 객관식 기본문제 수준으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이미 한번 흩뜨려진 맨탈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이 재무관리가 너무 평이하여 시간이 남아 미시경제학에 더 쏟아 부을 수 있었다. 뭐.. 큰 의미는 없었다. 결국 안풀렸고 답을 바꾼 것 중에 오히려 틀리는 것만 나왔다.


*시험 중에 문제가 어려워 시간을 많이 소비해야 하거나, 못 풀 것 같다면 일단 스킵하는 것이 좋다. 이정도 이론은 누구든지 알고 있을 것이다. 시험 중에 이런문제가 2~3문제 연속으로 나오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래도 그러려니하고 일단 스킵하고 한바퀴 돌고와서 풀자. 이 시험은 1차든 2차든 기본적인 문제를 틀리지 않는 것이 조기 합격의 포인트인 것 같다.



이렇게 첫시험은 마쳤다.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그런지 잘푼 것만 생각이 났고, 잘 본 것 같았다.(결과는 일경에서 몇개, 미시에서 진짜 주루룩털림)



<2교시>


2교시 구성은 이렇다.


시험시간 : 120분


과목 : 상법 40문제(상총칙 8문제, 회사법 24문제, 어음수표법 8문제), 세법 40문제(매년 다름. 법인세가 가장 많이 출제되고, 소득세, 부가세가 그 다음. 국기법이 4~5문제정도, 상증세가 보통 1~3문제, 지방세 1문제 가량 나오는 것같다.)



1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까지 포함되어 무척이나 길다. 나는 미리 죽을 싸왔으므로 5분내로 마무리하고, 5분정도 멍때리는 타임을 가진 후 상법 간략히 정리한 것과 세법하끝을 보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포인트는 눈으로 쭉쭉 발라 놓는 것이다. 1교시와는 달리 2교시인 법과목은 법조문이 선지자체로 구성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세법은 주민규 선생님으로만 갔어서 다른 책들은 어떤 구성인지 모르지만, 하끝 책 자체는 법조문 그 자체로 구성되어 있는 문장이 많아 시험문제 풀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강의는 아니다. 말만 하루에 끝장내기지.. 아니다. 배속으로 하루왠종일 들으면 하루에 끝장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보통은 상법먼저 풀고, 세법을 푸는 것 같다. 나도 같은 방식으로 갔다. 


상법은 쉬웠다. 나에게는 엄청 쉽지는 않았고, 실력이 딸렸는지, 헤깔리는 문제는 5지선다중 3개는 확실히 틀린 것을 알겠는데 나머지 2개가 아리까리 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점수를 득점했다.


세법부터 이제 한숨의 향연이 시작된다. 법인세가 나름 어렵게 출제되었다. 나는 초시생의 마음가짐으로 던질건 아예 던지자라는 마음으로 갔던지라 맨탈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걍 찍고 스킵할 대상이었다.


추후 공부를 더 하며 느낀 것은 다른 공부도 그렇지만 세법은 정말 모 아니면 도 이다. 특히 소득세 같은 경우는 컴퓨터 같은 판단능력을 가져야 한다. 쉽게 말해서는 단순 ox암기인데, 진작부터 엄밀하게 공부해 놓아야 나중에 고생하지 않는다. 이때는 무척이나 고생했다.


옆자리 수험생이 정말 그 시험시간 내내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좀 거슬렸으나 나중에는 이해되었다. 여기저기 계산기 투닥투닥 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자리만큼은 들리지가 않았다. 올림픽경험 삼아 응시한 수험생인 듯 보였다.



그리고 2교시도 끝이 났다.



<3교시>


3교시 구성은 이렇다.


시험시간 : 80분


시험과목 : 재무회계(35문제), 정부회계(5문제), 원가회계(10문제)



한교시만 남아서 그런지 긴장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였다. 초콜렛을 한움큼 씹어먹으며 정부회계를 눈으로 바르기 시작하였다.


회계학 시험에서의 전략은 정부회계 먼저 풀고, 원가회계를 풀고 재무회계를 푸는 방식으로 가져갔다. 16년도에는 유효했던 전략이었으나, 17년도에는 피똥을 싸지르는 전략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그렇듯 정부회계는 3~4문제만 건지자는 생각으로 슥슥 풀고 지나가고 원가회계도 풀만한 것만 먼저 풀었다. 


원가부분은 기본서만 가지고 공부했던지라 풀리는 것만 풀자라는 마인드로 임했었다.


그리고 재무회계를 풀었는데, 작년보다는 말문제가 적당하게 껴있어 난이도는 좀 쉬워보였으나, 그 당시 나는 연결회계에는 잼병이었기 때문에 많이 털리게 되었다.(뭐.. 박토원가야 그냥 던지는 거고..)


간신히 합격라인에 맞추는 정도로 득점하게 되었다.



시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몇시간 만에 1년을 평가받은 느낌이라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아침에 올때와 마찬가지로 잿빛하늘에 석양이 비추는 것을 바라보며 홍대에서 벗어났다.






결과론적으로 1차 시험에 합격은 했으나, 커트라인 근방에서 합격하여 발표까지 똥줄빠지게 대기하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커트가 구성된 수험생들은 동감하겠지만, 2차 공부가 무척이나 안된다.


1차가 되든 안되는 계속 공부를 할 계획이거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2차준비에 몰입하겠으나, 전년도 1년동안 너무 달려왔어서 그런지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발표후 몸에 이상이 오게 되고 큰 감기몸살에 걸려 약 3주가량을 공부에서 벗어나게 된다. 감기에서 낫자 게임에 빠지게 되었다. 


거의 2달에 가까운 시간을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며 허비하게 되자 2차공부를 반포기하는 상태가 되었고 유예구성이 정말 좋았던 16년도에서 다유가 뜨게 되는 처참한 구조를 맞게 되었다.


1차는 예선이고 본 게임은 2차부터 이다. 특히 동차시기에는 모두가 지치므로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버티는게 수험생활을 축소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2차에서 다유가 뜨게되어 1차취소와 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어 17년도 1차를 다시 준비하게 되었다.


16년도 여름은 몸과 멘탈관리 또한 1과목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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